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케아 제국 (문단 편집) === 니케아의 위기 === 하지만 니케아 제국의 초기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테오도로스 1세]]가 [[니케아]]에서 제국을 재건할 당시 아나톨리아는 다수의 군벌이 할거해 있었는데, 테오도로스 1세는 1205년까지 군벌 세력을 어느 정도 규합하는데 성공했고, 1208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좌를 니케아로 이전했다. 그러나 [[라틴 제국]]의 앙리는 아직 취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던 니케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앙리는 니케아를 멸망시키기 위해 소아시아를 침공해왔고, 테오도로스가 미리 동맹을 맺어놓은 [[불가리아 제2제국|불가리아]]의 차르 [[칼로얀]]의 개입이 아니였다면 니케아 제국은 멸망할뻔 했다. 또한 앙리의 소아시아 침공과 비슷한 시기에 [[룸 술탄국]]이 니케아 제국을 공격하여 [[프리기아]]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테오도로스 1세]]는 룸과의 국력 차이를 알고 있었기에 용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1211년 [[라틴 제국]], [[트라페준타 제국]], [[룸 술탄국]]은 니케아 제국을 분할 점령하기 위한 동맹을 맺었고, 룸군이 재차 니케아 제국을 침략해왔다. 1211년 안티오키아[* [[안티오크]]가 아닌, 메안드로스 강 유역에 위치한 도시이다.] 전투에서 압도적인 우세의 룸군을 맞아 니케아는 패배할 위기에 몰렸으나 테오도로스는 술탄 케이휘스레브 1세와의 [[일기토]]에서 승리를 거둬 그를 죽이는 기지를 발휘해 룸 술탄국의 군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했고, 테오도로스는 겨우 겨우 아나톨리아 영토를 지켜냈다. 하지만 니케아 제국은 이 전투에서의 피해로 병력 부족에 시달렸다. 한편, 안티오키아 전투가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가리아 문제를 마무리한 앙리는 다시 [[소아시아]]로 진격해왔다. 테오도로스는 당시 니케아 제국이 동원 가능한 최대의 병력이였던 2000여명 가량의 병력을 동원하여 리칸도스 강에서 매복 작전을 펼쳤지만, 앙리 1세는 이를 간파했다. 곧이어 벌어진 리칸도스 강 전투에서 니케아군은 대패했고 앙리는 님페온까지 진격했다. 니케아 최대의 위기였다. 그러나 님페온까지 진격하는 동안 니케아군의 게릴라전으로 지속적인 출혈을 강요당한 앙리는 라틴 제국의 국력만으로는 니케아 제국을 완전히 정복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1214년 테오도로스와 앙리는 님페온에서 비티니아와 미시아를 라틴 제국에게 넘겨주는 내용의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